[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1부 발제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제 1부 아름다운 삶을 찾아서

이 책은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 교수와 자연농의 대가이며 예술가인 가와구치 요스카즈의 대담을 기록한 책이다. 1부에서는 가와구치 요스카즈의 성장배경과 자연농을 시작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가와구치 선생은 2차 세계대전 세대로, 사쿠라이 현 대가족 농가의 5남매 중 셋째, 장남으로 태어났다. 패전 후 암울한 분위기가 팽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며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식량이 부족했던 상황이 극복되면서 공업 중심의 물질 문명 세계가 시작되었고 농업이 경시되는 풍조가 만연했다. 친척들이 분가하면서 가족이 축소되었다. 중학교 졸업 후 진학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나 형편이 어려워 전업 농부의 길에 서게 된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교 통신강좌를 수강하고 뒤늦게 고등학교에도 진학하여 주경야독하였지만 현실의 어려움과 공부와 삶의 괴리에 고민하다가 중퇴를 결정한다. 또한 농약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건강에 위험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한편, 농약과 기계를 사용하면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동생들이 독립하자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던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오사카의 덴노지 미술연구소에 다니기 시작했다. 심미안을 기르기 위해 10여년 간의 열정적인 탐구 과정을 겪었지만 세속적이고 부패한 미술계의 동향 속에서 회의한다. 예술의 본질은 ‘미추의 구별을 밝히고 추로부터 벗어나 미로 살아가는 것’이며, 좋은 예술을 하기 위해 결국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함을 깨달은 그는 직업으로서의 예술가가 아닌 삶 속에 예술을 끌어안는 길을 택한다. 이 무렵 제초제나 농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지만 실천하는 데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의 격차가 생긴다.

30대 후반, 결혼을 하고 몇 해가 지난 뒤 아사히 신문에서 연재하던 <복합오염>이라는 기사를 접하고 공포에 휩싸인다. 이 때부터 농업에서 기계와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하지만 보편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어머니가 심하게 반대하며 몸져누우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뜻을 꺾지 않고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그 당시 이미 대안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선구자들의 선례가 있었다. 그러나 가와구치 선생은 그들이 제시하는 정형화된 방법의 한계를 파악하고 매 순간 변화하는 현장을 관찰하고 귀 기울이기 위해 노력했다. 땅을 갈지 않고 파종과 수확의 형태와 시기를 정황에 따라 결정하는 등 자연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고, 응답하고 맡겨’ 생명의 관계망을 존중하고 인간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농법을 고수했던 것이다.

간 기능이 많이 악화된 신체의 병으로부터 자립하기 위해 한방을 독학했다. 동시에 아내의 자궁근종이 발견되면서 의사들이 수술을 권하자, 선생은 오랜 수소문 끝에 한방이라면 가능성이 있다는 한 침구사의 말을 따라 서적을 탐독하며 공부하였다. 수술을 받지 않은 아내는 침구 치료 과정 중에 세 차례나 임신했으며 고령의 베테랑 산파의 도움으로 세 번 모두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

첫 아이 출산과 함께 자연농을 시작했지만 10년 정도 실패의 과정을 겪어야 했고 그로 인한 혹독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지난한 과정을 지내며 옳고 바른 생각과 삶의 가치에 대한 신념은 더욱 공고해졌다. 비록 가난했고 어머니의 반대 역시 계속되었지만 아이들과는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예술적인 생활을 함께할 수 있었다. 이 때 출판사 사람을 만나게 되어 칼럼을 연재하고 책도 펴낼 수 있었다.